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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프라하의 봄을 기억하며)

동진대성 2020. 10. 12.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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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프라하의 봄을 기억하며)

요즘 뉴스를 끝까지 보기가 어지간히 힘들다.
하루를 잘 마무리 하고서도 뉴스를 보다보면 어느새 내 자존감이 바닥을 치게 된다.
무시에서 시작된 감정은 어느덧 모욕을 넘어 모멸감을 향해 돌진한다. 요즘 뉴스가 늘 그런 식이다.

도무지 끝을 알 수 없는 권력형 비리와 온갖 거짓들이 빤히 보이는데도, 뉴스안에서 너무나 당당한 모습으로 버젓이 돌아다니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내 존재마저 통째로 부정당하는 느낌이 든다.

물론 예전에도 그랬으리라. 급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정부주도적 사업들이 늘어나면서 정경유착은 뗄래야 뗄 수 없는 필요충분조건이자 필요악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러한 큰 테두리 속에 개인의 인권이 유린되고 국민의 자유가 억압되고 빈부의 격차가 생겨났으며 기득권의 되물림이 심화되었을 것이다. 결국 독재정권의 온갖 권력형 비리와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로 국민들은 매일같이 치를 떨어야 했을 것이다. 나역시 아버지의 영향으로 9시 뉴스에 전두환 얼굴이 나오는 날이면 저 악당! 이라고 어김없이 손가락질 했던 기억이 난다.(내 기억엔 거의 매일 tv에 나왔었다. 커서 대통령이 되라고 하셨을때 그럼 대머리가 되어야 하냐고 되물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때문에 국가주도적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발전 사이에 심각한 불협이 일어났고 그 모순을 타개하려 투쟁했던 이들이 바로 민주화 운동, 시민운동, 노동운동을 주도한 이른바 586세대라고 알고 있다. 결국 대학생들은 화염병을 들었고 지식인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저항하였으며 일반 시민들도 연대하여 대규모 시위가 때마다 일어났던 것으로 알고있다.

그런 아픔속에서도 민주주의는 발전해 갔고 우리나라는 어느덧 모든 면에서 크게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그런 시기를 거쳤기에 한강의 기적이 일어났을 것이며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그 위상을 높힐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똑같이 나쁜짓을 하더라도 창피한 줄은 알았던지 예전에는 숨어서 했다. 걸리면 머리숙여 사과했고 줄줄이 구속되어 지은 죄값을 받았다. 전부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군사독재시절을 제외하곤 국민이 아는 이상 그냥 넘어갔던 일은 없었다. 4년전에 최순실 사건이 대표적이라 하겠고, 그 이전에는 대통령의 형이, 더 이전에는 대통령의 아들도 구속된 바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라고해서 죄에 대한 책임을 비껴간 경우도 없었다. 안타깝게도 초대 대통령은 해외로 쫒겨나 죽음마저도 이 나라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박정희 대통령은 살해 당했으며,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는 구속되어 형벌을 받았거나 지금도 받고 있다. 노무현 역시 떳떳하지 못한 지난 행동에 대한 책임으로 목숨을 버렸다. 이런 과정을 봐왔던 나는 누구도 법 앞에서 평등한 것이라는 걸 차차 믿어가게 되었다. 적어도 보여지는 범위 내에서 밝혀진 사실에 대한 진실은 파헤쳐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온갖 입시 비리와 사모펀드 조작에 연루된 조국과 정경심은 아직도 버젓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나라를 휘젓고 있다. 나는 작년 8월 최초에 뉴스를 접했을 때만해도 그냥 웃어 넘겼었다. 과유불급이라고 교수나 할 사람이 감히 장관을 한다고 나서다가 괜한 망신만 당하니 꼴이 우습게 됐구나, 최순실과 그의 딸 사건과 다를 게 없으니 비슷한 결말을 맞이하겠구나, 했다. 그런데 웬걸. 장관이 되었다. 그것도 한 나라의 정의를 관장하는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됐다. 나는 당시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행태도 문제였지만, 여당 일당과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도무지 사그라들지 않았었다.

그 이후에 일어난 크고 작은 민주당의 작태들은 차치하더라도 역사를 팔아 사리사욕을 채우고 버젓이 국회의원이 된 윤미향과 몇달전 추미애 아들 사건은 또다시 내게 더 큰 분노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공무원의 안타까운 죽음에 이어 라임, 옵티머스 사건까지 제대로 밝혀지는 진실이 하나도 없다. 이밖에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어려울만큼 많은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할 말을 잃게 만든다.

하지만 가장 나를 분노케 하는건 이들의 언행이다.
사과는 커녕 잘못이 하나도 없다. 뻔뻔함을 너머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 같다. 심지어 떼지어 다니며 행하는 의기양양한 모습에서는 광기마저 느껴진다.
양심에 털났니, 라는 말은 아마 누구나 써먹어 본 말일 것이다. 오죽 뻔뻔한 사람이면 양심이라는 곳에 털이 다 나있겠는가. 양심良心은 다른 말로 선과 악을 판단하는 도덕적 의식이다. 그곳에 털이 났으니 판단을 제대로 할 리가 없다. 그들에게 양심은 그야말로 兩心일 것이다. 겉과 속이 다른 마음.

크리스티안 불프 전 독일대통령은 친구가 90만원 상당의 호텔 방을 제공해줬다는 의혹과 자동차 딜러에게 5만원 상당의 장난감 자동차를 아들 선물로 받았다는 의혹, 부인 자동차 리스에 0.5% 이자를 검면 받았다는 의혹과 재벌친구에게 1%저렴한 금리로 돈을 빌렸다는 의혹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독일인 85%가 신뢰를 잃은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기 때문이다. 물론 2년뒤 전체 무혐의로 사건은 종결되었다. 작금의 우리나라에서는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겠지만, 독일 국민들에게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작금의 비정상적인 초유의 사태들은 결국 행하는 이들과 그것을 묵인하거나 동조하는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 약 40%남짓의 시민들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되려 이제는 나쁜짓 하고 뻔뻔한 인간들이야 언젠가 역사가 평가하고 응징하면 되겠다 쳐도, 동조하고 참여한 40%의 우매한 인민들은 어찌해야 할까 라는 더 큰 절망감과 두려움이 엄습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원제 프라하의 봄에서 밀란 쿤데라는 키치, 라는 말을 현실에 대한 이면을 부정하고 이상이나 감동적 이미지만을 신봉하는 태도라는 뜻으로 재해석하여 표현했다.
누구나 불완전한 현실을 아름답고 완벽한 환상으로 대신하려는 욕구가 있는데 문제는 체험적 감정이나 이성을 무시하고 왜곡하여 미적인 가치만을 앞세우는 데 있다는 것이다. 결국 실질적인 감동이 아닌 관념적인 감동에 호소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키치에 가려진 세상은 맹목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이것이 그 당시 체코를 지배하던 전체주의 파시즘이었을 테다.

결국 작금의 시대가 프라하의 봄과 유사하다.
전체주의 파시즘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고 맹목적인 광신도들이 현실을 부정한 채 관념적인 감동에 매몰되어 좀비들처럼 날뛰고 있다. 그러다면 나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체코의 민주화를 이끌어낸 극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이며 대통령이었던 바츨라프 하벨은 이데올로기와 전체주의에 맞서 개인이 진리와 양심을 추구하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정치성을 표방하지 않고 진리와 양심을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시민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릴수 있게 만드는 시민운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진리와 양심을 되찾아야 한다.
그리하여 어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이 나라를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해야하지 않겠는가.
거짓된 무리들의 맹목적인 개떼가 되어 헛된 망상에 갇혀있는 자들이여 깨어나라.

끊임없이 국민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자들이여.
스물 넷의 윤동주는 시가 쉽게 쓰여지는 것조차 부끄러웠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했거늘, 그대들은 진정 부끄러움을 느낄 수 없단 말인가.

*지금껏 나는 얼마만큼의 부끄러움을 알고 살아왔던가,
스스로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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